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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소년’을 글로벌 환경리더로 키운건 “황당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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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03 14:06 조회1,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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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소년’을 글로벌 환경리더로 키운건 “황당한 꿈”

 

소년은 경남 산청 산골마을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학교에서 꼴찌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어느 날 장난을 너무 심하게 치다 논두렁에 빠져 다쳤다. ‘싹이 노랗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일이나 배우라며 멀리 부산으로 보내버렸다. 고물상을 하는 친척 집이었다. ‘가출 아닌 가출’을 한 소년은 고물로 들어온 헌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덕분에 중학교 입학해 첫 시험에서 덜컥 ‘전교 1등’을 했다. 그날로 집안에서 대접이 달라졌다. 온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와 고물상을 인수해 그를 뒷바라지했다. 소년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981년 연세대 경제학과에 당당히 입학했다. 그리고 그 역시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누구 못지않게 뜨거운 청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문민정부와 동유럽 사회주의체제 몰락을 겪으며 90년대 중반 들어 ‘운동권’이 해체되면서 그는 또 한번 반전의 선택을 했다.

 

그로부터 20년, ‘고물상 소년’은 유엔에서 주목받는 글로벌 환경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바로 오기출(54) 푸른아시아 사무총장이다. 그는 아시아 26개 나라 55개 단체가 연대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 콘퍼런스’ 조직위원장으로서 ‘테라시아 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전교 꼴찌 장난꾸러기 ‘가출 아닌 가출’
고물상집에서 헌책 독서하며 ‘전교 1등’
80~90년대 민주화운동 핵심 이론가

 

정치권 유혹 뿌리치고 ‘인류과제’ 관심
15년간 몽골사막화방지 ‘유엔 수상’
‘땅을 살려야 산다’ 테라시아 구상 제안

 

 

 

그는 지난 6월1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식량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밀란 엑스포’에서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을 맞아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에서 수여하는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푸른아시아를 통해 15년간 몽골의 황사 발원지 6곳에서 주민자립형 조림사업으로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정착시킴으로써 전세계 사막화 지역에 희망을 심어준 공로였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서 수락 연설을 통해 유엔에 ‘테라시아’를 공식 제안했다.

 

“테라시아 포럼은 한마디로 ‘아시아의 땅(테라)을 살리자’는 구상이다. 유엔에서 추진해온 ‘테라프리카’(테라+아프리카)의 아시아판 구상이다. 유엔은 빈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0년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를 세우고 특히 올해까지 아프리카 지역에서 빈곤층을 50% 줄이기로 했지만 실패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땅이 죽으면서 물부족과 식량난이 생긴다. 땅을 살리는 일은 기후변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일 뿐 아니라, 결국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다.”

 

그의 제안에 가장 먼저 호응을 해온 곳은 파미르고원을 공유하는 중앙아시아 나라들이다.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 등 5개국 정부 대표 50여명이 지난 7월 푸른아시아의 주민자립 조림사업장 가운데 하나인 몽골 에르덴 하늘마을을 견학했다. 이들은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약속하며 ‘에르덴 모델’을 자국에 적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6월17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밀란 엑스포’에서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에서 수여하는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을 받고 수상 연설을 하고 있는 오기출 사무총장. 푸른아시아 제공

 

그는 “앞으로 유엔과 5년에 걸쳐 테라시아 포럼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몽골·미얀마 등 아시아에 10억그루 나무를 심어 황사 발원지를 막는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2만㎢의 생태복원이 이뤄져 그 10배 정도 이상의 지역에서 모래먼지 폭풍을 저지할 수 있다. 사막화 방지와 식량 문제 해결을 통해 아시아가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가 환경운동에 관심을 둔 계기는 조금 엉뚱하다. 그는 82년부터 96년까지 민주화운동을 했다.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이른바 ‘전국 3대 조직의 정책실’을 모두 거친 운동권의 핵심 이론가였다. 92년 전민련이 해산되자 대다수 선배·동지들이 정치권으로 갔다. 더러는 의원 보좌관을 하거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래도 혼자 남아 96년까지 노동운동을 했다. “난 정치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운동에 나섰던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유행처럼 번지던 피시통신을 통해 그는 “황당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한국에서 할 일은 없다. 그런데 나라 밖, 인류는 어떤 현안을 갖고 있는가”가 궁금해졌다. 근데 그때만 해도 영어 한마디 못했다. 대신 인터넷에서 식량·빈곤 문제를 다루는 미국·유럽·일본 등의 엔지오(NGO)나 전문기관들의 팩스번호를 알아내 무조건 보냈다.

 

그렇게 2년 사이 자신과 같은 몽상가 30명 정도가 모여 98 년 한국휴먼네트워크를 열었다. 99년부터 한·중·일·대만·몽골 5개국 엔지오 대표들과 ‘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순회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를 통해 금융위기와 더불어 기후변화가 가장 심각한 아시아의 현안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 황사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환경부와 기상청 등의 요청으로 몽골의 사막화 정보를 제공한 것을 계기로 조림사업과 환경난민 자립사업, 에코투어 등 구체적인 현장 활동을 시작했다. 2008 년 지금의 ‘푸른아시아’로 명칭을 다시 변경했다. 지난해부터는 미얀마에도 진출해 중부건조지역 사막화 방지를 위해 240㏊에 15만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지구 공동체가 모두 당면한 절박한 현실이다. 우리 같은 엔지오와 종교단체 등 민간 리더들이 먼저 시작하되 국가 차원에서 같이 결합해 함께 해결해야 한다. 바로 거버넌스다. 앞으로 한국 정부가 ‘테라시아 선언’을 주도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고물장사나 할 뻔했던 자신이 지금 인류적 문제를 고민하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 ‘황당한 꿈’이었다며, 무엇보다 꿈이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blog.naver.com/ogc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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